화석정을 떠나
율곡선생과 신사임당 묘역이 있는곳 자원서원으로 간다
가는 내내 군부대 곳곳에 있다
아들녀석 생각이 ..
자원서운은 아들녀석 유치원 소풍지 였던
신사임당하면 강릉으로 머리에 박혀있던
가족묘지에 우린 소풍 놀이를 했던
소풍하기에 좋은 계절
곧 축제가 있을 ..
금난새와 함께하는 음악회가 눈길을 끈다
관람료가
새로와진 환경
가을이 와있다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로 하여금 창건되었다.
효종 원년(1650)에 ‘자운’이라 사액(임금이 사당이나 서원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을 받은 서원으로
후에 선생님의 후학인 김장생, 박세채등 세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던 곳이기도 하다
강릉으로 너무 익숙한 신사임당
어머니의 고향 강릉 외가에서 태여낫지만
본가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을 하셨다는
여인의 못마땅한 님에 대한 불만
세상에 부인을 셋이나 두셨다
좋아하는 그림으로 마음 달래고
님의뜻을 본다
교육방법
아는것과 행하는것
지와 행을 아울러 중시하는 교육 ..
어릴적 율곡선생님이 이쓰시던 벼루
간찰
짧은 글이긴 하나 율곡이 그의 신변적인 내용을 직접 쓴 것이어서
율곡의 서정과 생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유품이기도 하다는
짧은 한자 실력으로 읽지못해 못내 아쉬운 .
좋은 말씀 마음에 새기며
연못을 지나
그분의 뜻을 생각하며
참배를 ..
솔향기 속에
율곡 선생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큰 영향으로 외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는데
태어난 곳도 외가가 있는 강릉의 오죽헌이고 그 곳에서 6세 때까지 성장을 했다.
조선중기의 대학자로 활동할 때에는 황해도 해주에서 지냈으며
선조때부터 살아온 임진강변 근처인 율곡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특히 호가 율곡인 것은 파주의 율곡리에서 유래된
이곳 자운산 기슭에 자리한 율곡 선생님과
그의 부인 노씨와 그의 부친.모친 신사임당들
가족묘소를 마련한
이 묘역의 특징은 역장묘라고 해서 가장 높은
위쪽에 율곡선생이 아닌 그의 부인 노씨의 묘가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밑에 율곡 선생 그 아래쪽으로 부모의 묘가 합장묘로 있다.
조선중기 당시에는 자식이 입신양명 했을때 부모보다 더 높은곳에 모셔지는걸 당연시 했던 풍습도 있었다.
현재 이 곳엔 15기의 가족묘로 이뤄져있다는 .
아무리 출세를 했기로
부모님 보다 높은 곳에서 ..
그래 늙은 부모님을 높은 곳에서 경호 한다고 해석 해야지
평안 하소서
그리고 이곳은
자원서운은
앞쪽에 강학공간인 강인당과
기숙사인 동 ,서재가 있고
뒷쪽에문성사가 배치 되어있는
자운서원은 수도인 한양과 가까이 있는 관계로
서원의 규모도 크지 않고 경관이 수려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까닭에
누각을 비롯하여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있지 않다는
유생이 묵었던 기숙사
강당인 강인당
오랜된 나무
문성사
율곡선생과 제자 김장생 박새채 선생으 위패를 모신 사당
대원군 서운철폐 명령에 헐어졌다 새로 지여젔다는
님의 향기를 새기며
돌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