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 마당에서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러 왔다
그림을 그리는 동생은
시골 빈 집을 구입해 화실로 이용하고 있다
화실 뒤편에
말없이 서있는 늙은 흙담 한채
이곳에
아버지의 한숨소리
엄마의 자장가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가 있었겠지
주인장은 추억을 묻어두기 위해
이 집을 남겨둔 것 같다
오손도손 살아갔을
마당에 새집을 짓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가족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겠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채 마당을 지키는 녀석들
하 요녀석이 날 부르는
어린 시절 어두운 밤에 필수품
이동식 화장실 요강
요즈음 아이들은 이해할까
옷을 입고 있는 항아리
녀석의 역활은 무엇이었을까
깨진 항아리 하나
깨진 항아리/ 이서린
깨진 항아리를 주워왔다
본드를 바르고 철사를 감고
바닥에 진흙 깔고 물을 가득 채웠다
편백나무 아래 놓고 연을 사다 넣었다
새벽 달 조용히 머물다 가더니
사금파리 같은 햇살 놀다 가더니
참새 몇 마리 물 먹고 가더니
개구리 한 마리 터 잡고 살더니
연꽃이 피었다
바람이 수면을 흔들자
얼굴 하나가 웃었다
둥근 물 속에 하늘이 보였다
마당을 채우고 있는 풀꽃들
무릎을 꿇고 녀석과 인사를
마당에서 소리들다 / 이서린
햇빛 좋은 날 마당에 앉아 눈감고 다만 들려오는 소리 듣기로 한다. 나의
깊은 숨소리 몇 번 지나간 뒤 석류나무에 쉬었다 가는 직박구리, 혼자 사는
할머니 집 텃밭의 잔기침, 멀리 버스 지나가는, 만물상 트럭 스피커 왔다 가
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처마 끝 풍경, 심심해서 응얼대는 늙은 개의
투정, 건너편 석산 밭의 작업하는 , 가끔 햇빛 돌아눕는,
우체부 오토바이 소리에 눈뜨니 마을 이장님 물세 받으러 오신다. 경보총
각 오늘도 꾀죄죄한 강아지 두 마리 데리고 마을회관에 마실 간단다. 무엇 그
리 궁금한지 감나무는 길 쪽으로 가지 뻗고 마당 한 구석 빈 항아리는 연거푸
하품하고 있다. 하늘은 저리 파랗게 바람 일으키는데 절반이 전쟁터인 열사
의 나라 버려지고 부서지는 또 다른 거기에서도 햇빛이 몸 뒤척이는 소리 들
을 수 있을까 ,
겨울 가뭄이 오랜 간다. 마른 댓잎 서걱이는 사이로 산비둘기 푸드덕 날아오
른다 와글와글 내 안의 소리도 오늘은 가만히 바람 속에 풀어놓는다. 다시
눈감고 온몸으로 들려오는 소리 무심히 듣는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가
이서린
늙은 매화나무의 아우성
산을 흔드는 향기
담장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