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정에서
오래만에 황희 선생을 만나러 왔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파주 황희선생 유적지
관람료 1000원을 주고
들어간다
쉼터 의자도 새롭게 보이고
영당
황희정승은 고려공민왕12년에 태어나
조선 문종 2년에 세상을 떠난 정치가
조선 4대임금을 도와 많은 업적을 남기었는데
특히 세종의 지우을 입어 빛나는 업적을 남기었으며
청백리로 유명
많은 일화가 있다
황희정승이 은퇴해 있을 때 어떤사람이 찾아와
그는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오늘이 저희 아버님 제삿날이지만
제사를 지낼 수 없겟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그야 지낼 수 없지"라고 대답했다
이어 도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저희집 돼지가 새끼를 낳았지만 내일 아버님 제사는 모셔야되겠지요 ?"라고 묻자
그는 "그야 물론 모셔야지요 ?" 라고 했다
뒤에 부인이
"한 사람은 안된다 하시고 한 사람은 된다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하고 묻자
황희는
소나 돼지가 새끼를 낳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제사인데 지내고 싶은 사람은 지내게 하고
지내기 싫은 놈에게는 하지 말도록 하였을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마음가짐을 이야기 하는것 같다
황희 정승과 두마리 소
황희정승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황희정승은 나중에 훌륭한 정승이 되었지만
젊었을때는 자신의 재부만 믿고 제멋대로 행동한 적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했다가 후회를 한적도 많다고 한다
횡희가 벼슬아치들의 미움을 받아 잠시 쉴 때일이다
황희는 이 기회에 전국 유람이나 하여 견문을 넓히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남쪽 어느 지방에 이르렀을때였다
때는 마침 모내기 시기라 들판에는 사람들이 많이 흩어져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황희는 땀을 식히려고 나무 그늘에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맞은 편 논에서 늙은 농부 한 사람이 누렁소 한마리와 검정소 한 마리를 부려 논을 갈고 있었다
황희는 한참 구경하다 그 농부에게
'누렁소와 검정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늙은 농부는 일손을 놓고 일부러 황희가 있는 그늘까지 올라오더니
황희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렁 소 가 더 잘하오"
황희는 농부의 태도에 어이가 없엇다
"별일을 아닌것을 가지고 일부러 논 밖으로 나오시오
또 귓속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늙은 농부는 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두마리가 다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더 잘한다고 하면
못한다고 하는 족의 소는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하느게 아니잖소
황희는 농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앗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
황희는 농부에게 큰절을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한다
이후 황희는 죽을때 까지 남의 단점이라고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훌륭한 정승으로 그이름을 남기고 있는것이라 하는데....
후손들이 가꾸어놓은 유적지를 걸어본다
전에와 달리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
마루방에서 한 잠을 생각해본다
방안에 황희 선생님 이야기가 가득하다
지붕도 예뻐 보인다
곡선이 아름답다
한가로움이 좋다
황희선생도 이 조용함이 좋았겠지
반구정
갈매기와 벗삼아
반구정은
조선 세종때 유명한 정승이었던 황희 (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삼아 여생을 보내시던 곳
임진강 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낙하정이라 불렀다 한다
반구정은 황희가 죽은후 조상을 추모하는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하여 오다가
한국전쟁에 불타버렸고
그 뒤 이 근처 후손들이 복구해오다
1967년에 크게 고쳐지었다한다....
강을 바라보며 시 한수 읊으며
아름다운 여생을 보대신 황희 선생을 상상 해본다
부럽네 정자를 가질수 있는 여유가
철조망이 걷어지면
저길도 둘레길로 변하겠지
임진강 따라 ....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
부산간 손녀녀석이 내일 올라온다
마음껏 여유를 부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