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은 지금

마산 광려산 광산사에서...추석연휴 에

하늘냄새2 2010. 9. 26. 21:43

 

 

 

추석 전날  오빠는 천년고찰을 소개하신다 

 광산사 

마산시 내서읍

아니 이제 창원시 내서읍 신감리

마산을 살면서도 마산을 몰랐던 마산이 없어지고서야

이제 마산을 느껴본다  

여튼 마산 낯익은 길을벗으나  제법 깊은 산길을 올라간다  

그리고 

문을 들어서고  

 

 

새겨야말 글들이.... 

 

 

돌탑길을두고 

사찰 이 보인다 

 

 

 

 

남의집 방문

우선 인사 부터나누고  

_()_ _()_ 

 

 

 

 

마음이여.. 

 

 

호흡가다듬고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겐

생사의 밤은 길고 멀어라  

진리란  

 

 

해탈문 

 

 말 그대로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이다

 

 

萬行

만행 만행 ????

만행이란  이렇다 

 

만행이란 사전적 의미로 불교도나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구름과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떠도는 생활로서 문자 그대로 표현하면 만(萬)가지의 행(行)이다. 스님들이 하안거(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세 달 동안)와 동안거(음력 10월 보름부터 이듬해 1월 보름까지 세 달 동안)를 마치고 전국의 수행처나 나름대로의 수행할 만한 곳을 찾아 떠나는 각각 3개월 동안을 말한다. 구름따라 물따라 산천초목을 다니면서 수행을 한다고 하여 운수(雲水)라고도 하고, 낡은 천을 모아 누덕누덕 기워 만든 옷을 입고 구름처럼 흘러 다니는 수행승을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먹고 자고 눕고 걷고 말하고 침묵하는 등의 일체 행동이 모두 수행 중생구제와 관련된다는 뜻이 들어있다. 참선을 통한 구도정진에만 몰두하는 안거 동안의 제한된 활동과는 달리 걸식하며 누더기 옷을 입고 하루 한끼 먹으며 이슬 맞고 잠을 청하는 것이 만행의 기본인 것이다. 이는 곧 헐벗고 굶주림의 생활과 다를 바 없다. 그냥 선방에 머물지 않고 마냥 떠도는 생활이 아니라 처절한 구도행이 바로 만행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소박한 사찰이다  

 

 

 

사찰마다 기와장이 ...

 

 

 

 스님 추석 연휴 ...

 

 

 

모두가 휴식

 

 

어디  광산사 를 둘러보자 

 

장맛  

 

 

특이하게도

마당에   토끼 녀석들  내 발자욱 소리에도

눈하나 깜짝 않는다 

간 큰 녀석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 

 

 

 

원무소 

다기들  보니  

법정스님 생각나는  

 

 

 

 

대웅전 

 

 

 

놀러 왔다고 인사드리고 

 

 

 

문살 무늬에 ..

 

 

분명 뜻이 있을텐데 ...

 

 

 

 광려산 자락에  자리잡은  광산사  

 

광산사(匡山寺)가 위치한 광려산(匡廬山)은 중국의 명산인 여산(廬山)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의 기암절벽이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여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시인묵객과 나그네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橫看成嶺側成峯 이쪽을 보니 산마루요 저쪽을 보니 봉우리다
遠近高低各不同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저마다 같지 않구나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 알기 어려우니
只緣身在此山中 다만 내 몸이 산에 묻혀 있을 따름이로다

이 칠언절구는 소동파(蘇東坡)가 중국의 여산을 둘러보고 난 후 그 심오함을 읊은 시이다. 셋째 구절에 나오는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은 ‘너무도 깊고 그윽하여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즐겨 사용되는 말로, 바로 이 시구에서 유래된 것이다. 광산사의 ‘광산(匡山)’ 역시 중국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말로, 은둔자의 대명사인 광유(匡裕)가 여산에 초당(草堂)을 짓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여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광산사의 창건주로 원효스님 외에 중국의 은신스님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이후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법등을 이어왔던 광산사는 6.25로 말미암아 폐허가 되고 현재의 가람은 그 이후에 새롭게 조성된 단출한 규모이지만, 사찰에 남아 있는 현판문이나 상량문 등을 통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광산사중건상량문(匡山寺重建上樑文)」은 구한말의 항일운동가인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직접 쓴 상량문으로 유명하다. .... 한국 관광공사 .....

 

  

 

 

 

해탈 했는가 그대 ??

감사하며 착하게 살자 

 

 

 

광산사를 안고 있는 숲이 좋다 

 

 

숲이여 영원하라